건축_뮤지엄 산

2020년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첫 건축 답사지였던 뮤지엄산.
2024년 8월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 4년이 지나 제일 좋아하는 동생들과 건축에 진심인 친구들을 모아 다시 방문했다.

서울에서 형주, 순필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이동한 뒤 공항에 먼저 도착해있던 나연을 만나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곧 대만에서 출발한 TAK과 MILO가 도착했다.

나연과 TAK은 LA에서 같은 학부를 1년 차이로 졸업한 뒤 몇 년만의 재회였고, MILO는 그들의 후배? 후기수였다. 역시 초면.
다들 어색할법도 한데 인천공항에서 바로 원주로 이동하면서 좋아하는 건축가 이야기부터 한국과 대만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니 금새 친해진 기분이었다.
역시 건축이라는 접점이 있다보니 통하는게 있는 것 같다.
(하긴 그러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뮤지엄산을 가자고 하지..)

나는 안도의 팬은 아니지만 그의 건축에 대한 진정성과 그가 만들어낸 건축의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건축에 뒤늦은 나이로 입문한 그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까지 이어온 자기 절제와 끊잆엄는 훈련은 존경스럽다.

인포를 지나면 곡선의 출입복도를 통해 본관으로 입장하게 되는데, 이 공간이 참 재밌다.
2층 높이의 공간이 복도와 계단으로 적절히 분절되어 있고, 높은 층고의 벽은 자연석으로 뒤덮혀 슬릿한 천창으로 부터 유입되는 빛으로 거칠지만 다양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자연석 마감은 시공사가 먼저 제안했다고 하는데, 노출콘크리트의 매끈함과 대비되는 질감이 공간에 풍요로움을 배가시킨다.


2023년 증축된 <Space of Light>, Ando Tadao
좁은 콘크리트 벽을 따라 내려가면 네모박스안의 빛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보 없이 2m이상 돌출된 슬라브가 만들어내는 빛의 십자가에는 유리가 끼워져 있지 않아 날 것의 빛이 그대로 유입된다. 규모는 작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그의 건축관, 건축언어를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Tadao Ando’s ‘Space of Light’, a meditation pavilion, opens in South Korea
링크 : 바로가기


건축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 스스로만 존재했을 때에는 알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
이 때에 느껴지는 감동이 좋다.

알렉산더 리버만, Archway, 1997
날카롭게 재단된 12개의 철조각이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연결되어 물에 떠있는 듯 서있다.
뮤지엄산의 입구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긴 복도에 질서와 리듬감을 부여하는 자연광의 유입은 마치 문단의 줄나눔, 악보의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건축가의 의도가 정확히 구현 될 때의 희열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육중한 콘크리트 블록이 떠 있는 느낌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구조적 검토를 하였을까.
사실 이 정도까지 구현할 생각이었다면 저 슬릿창의 프레임마저 없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채색의 콘크리트 공간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만들어 내는 빛의 효과는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마치 하나의 작품이 되어버린 뮤지엄산 공용공간의 일부분.

사실 이 사진은 조금 씁쓸한 마음으로 담았다.
옛 건축가.. 그러니까 고전 건축과 고딕 양식을 따랐던 건축가들이 이 조잡하고 불규칙한 마감의 콘크리트 기둥을 보았다면 얼마나 경악했을지 상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산업혁명으로 탄생한 모더니즘을 어느새 미의 기준으로서 찬양하고 있고,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그만한 디테일을 만들지 못하는 실력을 감추기 위해 장식에 대한 죄의식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 같다.
저기 보이는 매끈한 조각과 한 프레임에 담으니 그 차이가 더욱 선명하다.

물이 흐르지 않아서 더 좋았던 외부공간.
어두운 자갈은 얕은 물과 만나 거울처럼 숲과 하늘을 반사하여 자연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햇빛에 반사된 일렁이는 물 그림자는 건물 내부에 생동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골든 타임의 뮤지엄 산 본관의 모습.
매시브한 건물은 자칫 너무 단순하거나 혹은 위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자연 요소를 충분히 배치하고 선형의 얇은 진입로, 강렬한 색상의 조각상이 만들어 내는 신선함, 떠 있는 듯한 지붕과 그 사이로 빠져나오는 조명이 어우러져 어색하지 않은 조화를 만들어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보았던 높은 수준의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도 크지만, 소소하더라도 이렇게 건축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감동을 나누는 시간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